민화는 현재, 현세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꿈으로 보았다. 민화작가들은 인생과 자연 자체가 큰 꿈이고 예술이 바로 꿈이라고 믿고 있었다. 먼저 사람과 인생 자체를 아름다운 꿈으로 표현했다. 민화에는 한국의 민속예술, 즉 민속음악, 무용, 연극, 민담 그리고 민간조각과 민가(民歌) 등의 내용과 같이 꿈이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인생은 꿈 속의 꿈이니, 한평생을 즐겁고 기쁘게 보내기 위해서 놀이, 즉 예술에 바칠 수 밖에 없다는 어느 시조시인의 노래처럼 장인들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놀이로서 꿈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민화의 꿈, 꿈의 민화는 한국장인들이 찾아낸 자랑스러운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옛날 그림들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용기와 슬기와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는 생명의 예술양식이다. 꿈같은 이 세상을 꿈보다 더 아름답게 긍정하며 살아온 위대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구원과 계시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장인들은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사람과 세상과 하늘에 대한 온화한 사랑을 지니고 산 사람들이며 그 사랑의 포근함을 작품 속에 잘 새겨 넣었다. 이들이 만든 좋은 작품 속에는 그 애정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잘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그림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민화는 인간, 자연 그리고 초자연에 대한 한국인의 따뜻한 사랑을 평이하고 간단하게, 순직하게 그렸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나, 부부, 가족, 친인척, 이웃, 동네, 고향, 국가사회 그리고 현세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다. 어수룩하고 모자란 데가 있기에 더 인간적이고 더 따뜻한, 이러한 미완성에서 보다 인간적 따뜻함이 넘치며, 이것이 바로 한국 예술의 참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장인들의 믿음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그림이 민화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사랑을 믿었다. 지난날의 한국그림의 따뜻함과 꿈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 사랑만이 가장 강하고 위대한 진실임을 믿고 있었다. 또한 사람에 대한 믿음 못지 않게 자연에 때한 큰 믿음을 지녔다. 그들은 자연을 믿고 따르고 하나가 되고자 했고, 그리고 그 조화에 참여했다.
한국의 장인들은 그들의 예술을 믿었다. 아름다움과 예술의 진실을 믿었다. 예술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그러한 믿음으로 예술을 해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양식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믿음을 지켰다. 민화에는 인간, 자연, 예술과 함께 초자연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영화(富貴榮華), 벽사진경을 위한 민화의 본바닥에는 人生事와 자연 속에서 영원 무궁토록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믿음이 있다.
민화는 뜻을 그린 그림이다. 보기 좋은 경치나 꽃과 새를 눈에 비치는 모양대로 그리지 않고 대상의 정신이나 참모습, 그 느낌과 생각을 그려 낸 것이다. 자연과 인생의 뜻을 그릴 뿐만 아니라 새로운 모양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누구나 알기 쉽게 그린 것이다. 정통화도 뜻과 실상, 진실의 모습을 그렸으나, 민화처럼 쉽고 자유스럽고 재미나지 않다.
한국의 장인들이 인생과 우주의 진실을 민화 속에서 재미있게, 그러나 모든 뜻이 담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민화를 그린 한국의 환쟁이들은 글이나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딱딱하고 복잡한 글을 좋아할 까닭이 없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었던가. 그 속에서 한평생을 오직 그림만을 그리다 보니 자연 그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우주에 대한, 자연에 대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예술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훤하게 세상 물리(物理)가 트이게 되는 것이다. 그저 한평생을 그 길을 걷다 보니 훤히 보이는 세상의 이치가 있게 되고, 그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