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일반 대중의 기호와 요구에 따라 수천의 화공들이 찾아낸 내용과 양식에 따라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몇 천년을 그려온 민화의 주제는 언제나 비슷했다. 화조, 산수, 민속, 교화 모든 그림들이 이미 청동기 시대부터 끊임없이 내려왔던 것이다.
순수한 민화풍(民畵風) 그림들은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찾았다. 그림의 크기, 화폭의 모양이 멋대로다. 장지에다가도 그렸으나 창호지에도 그렸으며 화선지, 양지, 모조지, 삼베, 모시, 양사, 비단, 광목나무판자, 닥치는대로 그리고 바탕이 주는 아름다움을 찾았으며 물감도 가리지 않고 사용하였다.

한국의 미술과 공예에는 양산(量産)의 흔적이 없다.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의 같은 작품을 찾지 못한다. 그처럼 많은 민화들에서도 한국인들은 절대로 꼭같은 두 개를 만들지 않았다.

민화가 다른 그림과 다른 점은 그림 속에 나오는 모든 물건의 형태가 자유스럽다는 점이다. 많은 민화들이 어설프고, 바보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 모양이 이그러지고, 바뀌고, 과장되고, 없어진데서 비롯된다.
또 민화에는 뾰족한 예각이 없다. 막힌 데도 없다. 마치 모든 자연의 물체처럼 너그럽고 둥글둥글하다, 이것이 민화의 친화력, 동화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민화는 선으로 형체의 외곽을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칠했다. 많은 민화의 선은 두툼하고 힘차다. 그러면서도 모난 데가 없고 부드럽다. 물 흐르듯이 미끄러진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 민화의 형상은 원만하다. 뿐만 아니라 민화의 선은 빠르다. 속도와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같은 내용의 그림을 몇십 년 그린데서 오는 숙련이 단 몇 분 동안에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광풍처럼 빠른 속도는 다른 그림에서 찾기 힘들다..

한국 민화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색에 있다. 민화의 색은 세상을 푸른색, 뷹은색, 검정색, 흰색, 노랑색의 다섯 가지의 조화와 변화로 본 무교와 음양오행사상 등에서 유래 되었으며 그 변화와 배합, 안분(按分)에는 회화적인 원칙 말고도 철학적인 뜻이 담겨 있다.
또 화공들은 대상의 색깔보다 그림 안에서의 색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주관적인 색가(色價)를 더 중요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의 빛깔이다. 같은 두 개의 민화가 없듯 같은 두 가지 색이 없다.

전통 회화의 기법과 화법에 얽매이지 않은 민화의 구도, 원근은 모두 자유스러웠다. 민화의 작가들은 먼저 화폭 안에서의 여러 물체, 형상의 짜임새와 새로운 질서를 더 중요시했다.
다양스런 구도와 배치를 통해 화폭 안에서의 움직임, 시간의 흐름, 자연의 음악소리를 나타내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여백이라 부른 그림없는 공간을 거기에 그린 물체나 형상보다 더 중요시한 그림이 많다.

그들은 한 평생의 생활과 수천 년의 민화쟁이의 전통에 따라 몸과 뼈를 깎는 노력만은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허드레 그림같은 민화 속에도 그들의 피와 생명을 쏟아 넣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민화를 그린 화공들이 비록 한국 화단의 주류에서 벗어나 작품 활동을 했다 하더라도 세계 그 어떤 민화와 다른 뛰어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